10억원이 넘는 사기를 당한 전직 판사 가족이 '사기범의 출국금지 요청을 6번이나 받아들이지 않은 경찰의 책임이 크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동아)는 김모씨(43·여)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5억원을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10일 밝혔다.

김씨는 2015년 '돈을 맡기면 대부업체 등에 투자해 월 2%의 이자를 주겠다'는 지인 조모씨(43) 부부에게 10억여원을 맡겼다. 김씨의 남편은 고법판사를 지내다 퇴직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이자가 매달 입금됐지만 다단계 사기를 의심한 김씨가 '원금을 다시 달라'고 하자 조씨 등은 거부했다. 이에 김씨는 '조씨 부부가 12억8900만원을 편취했다'며 지난해 5월23일 검찰에 고소했다.

김씨는 해당 고소장에서 조씨 등에 대해 출국금지 처분을 요청했다. 베트남에 주택을 가지고 있고 사업장 월세도 열 달 가까이 밀려있어 해외로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사건을 맡은 강남경찰서 등에 지난해 7월7일까지 총 6차례 출국금지 처분을 요청했다.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조씨 부부는 자진출석하기로 약속한 7월8일 경찰서 대신 베트남으로 출국해 종적을 감췄다. 김씨 외에도 10여명이 조씨 부부에게 100억원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조씨의 사기 혐의가 상당하고 해외 도피 가능성이 충분해 6번이나 출국금지 요청을 했다"며 "그런데도 경찰은 검찰에 출국금지 요청을 올리지 않아 결국 도주했으니 국가는 재산상·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전문적인 판단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돼야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며 "출국금지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처분이기에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국금지 처분을 하려면 범죄 혐의와 해외도피 가능성이 상당한 정도로 소명돼야 한다"며 "하지만 경찰이 조씨 부부에 대해 출국금지 요청을 하지 않은 데는 부당한 의도나 불합리한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당시 김씨가 제출한 증거 자료는 대부분 조씨의 계좌에 돈을 이체한 내역이었다"며 "이런 내역과 녹취록 등 자료로는 조씨 부부가 김씨를 기망하고 있다고 경찰이 판단하기가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 후로도 김씨는 조씨 부부가 해외로 도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만 반복했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조씨 부부의 사기 혐의를 단정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출처: 뉴스1  hshan997@newsto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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