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 재판부가 핵심과 무관한 증인신문 등 비효율적 공판 진행에 대해 엄중 경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김진동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열린 31차 이 부회장 등 삼성 임원 공판을 마무리하며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이 삼성의 현안이었다는 것은 당연하다"며 "특검은 시간순서대로 사건을 나열하지 말고 합병에 대한 청와대의 영향력이나 삼성의 개입 여부에 집중해라"라고 주문했다. 이어 "오늘처럼 시간 순서대로 모든 사실 관계를 망라하는 신문은 필요없는 상황 아닌가 강하게 생각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공판에선 핵심 증인인 홍완선 국민연금관리공단 전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증인 1명에 대한 신문이었음에도 오전 10시에 시작한 재판이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이났다. 이 재판의 핵심은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고, 청와대가 실제 개입해 압력을 행사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공방보다는 쟁점에서 벗어난 일반론적인 질문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을 재판부가 지적한 것이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려지며 특검과 삼성 양측의 공방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증인 신문 내용을 살펴보면 불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두달 넘게 특검과 삼성은 승마 지원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 순환출자 해소 관련 결정,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등에 대한 서증조사와 증인신문 등을 통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자정을 넘기는 일도 잦다.

지난 2월17일 구속수감된 이 부회장은 3월 세 차례 공판준비기일을 거쳐 4월7일 본격 공판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열린 재판만 31회로, 주요증인이 나온 날은 매번 자정을 넘길 정도로 심리가 길어지며 재판부의 피로감도 높아지고 있다. 숱한 공방이 오갔지만 결국 이 재판의 핵심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2차 독대인 2015년 7월25일 전에 최순실의 존재와 그의 영향력을 파악하고 승마지원 등의 대가로 각종 현안을 청탁했는지 여부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 1차 독대 때부터 최순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삼성이 독일에 있는 최순실 측으로 승마지원을 위한 돈을 보낸 첫 시점은 2015년 9월14일이다. 특검은 "이미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1차 독대인 2014년 9월부터 정유라를 알았고 다만 정유라 출산과 겹치면서 본격적인 승마지원이 2차 독대인 2015년 7월25일 이후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은 독대 이전에는 최순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 진술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당시 2차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레이저' 눈빛을 받으며 승마지원이 미비하다는 질책을 들었고 이후 삼성은 부랴부랴 승마지원에 나섰다. 이후 한 달 뒤인 8월에서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대한승마협회장)이 독일에서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를 만난 자리에서 최순실의 존재와 영향력에 대해 들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 부회장이 독대 전에 최순실의 존재와 영향력을 알았다는 직접적 증거나 증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아예 삼성 측은 특검이 단순 뇌물공여죄로 기소한 승마지원 부분에 대해서는 죄의 불성립을 주장하고 나섰다. 삼성 측은 특검의 공소장 오류를 지적하며 단순뇌물공여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가 이날 강하게 공판 진행의 효율성을 주문한 것도 핵심 쟁점에 대해 다툴 시간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삼성의 부정한 청탁과 청와대의 개입 여부, 대가관계가 진짜 있었는지를 다퉈야 하지만 재판이 주변부로 흐르면서 7월 말 결심공판을 하겠다는 재판부의 계획이 가능할지 회의적 시각이 많다. 구속 피고인의 최장 구속기간은 6개월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기한은 오는 8월 27일이다. 통상적으로 선고는 구속기한 만료 전에 이뤄진다.

전날 공판에서도 특검 측 조상원 검사는 홍 전 본부장에게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들의 직업을 묻거나, 대부분 교수로 구성된 전문위원들의 전공과목을 질문해 방청석에서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이전에 이뤄진 SK와 SK C&C 합병 당시 국민연금 회의록을 제시하며 이 부분 사실 검증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삼성 측은 증인신문 예정시간은 지켰지만 역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비율이 적정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경영 경제학 수업 시간을 연상시킬 정도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공세를 펼쳐 재판부의 제지를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오늘 특검과 삼성 양측에 세게 얘기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며 "예정된 신문시간을 지키고 시간 지연 사유가 있다면 미리 말해달라"고 경고했다. 특검의 주신문 시간이 지나치게 초과됐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김 부장판사는 특검 측에 "오늘과 같이 주신문을 시간순서대로 하는 것은 필요없는 사항이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또 삼성 측에는 "오늘까지만 합병 비율의 적정성에 대해 논하고 이후에는 의견서로 제출하라"며 "재판부가 보기에는 합병비율의 적정성은 이 사건 쟁점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특검과 삼성은 22일 오후 2시 재판부 입회하에 특검이 핵심증거로 주장하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경제수석의 업무수첩을 열람한다. 업무수첩을 사진으로 찍겠다는 삼성 측 변호인과 불필요하다는 특검 측 입장이 엇갈렸지만 재판부는 가필이 있는지나 필체, 메모 시점 등 일부 정밀 확인이 필요한 수첩 내용은 찍어도 좋다고 허가했다.

출처: 뉴스1  hshan997@newsto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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