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사태가 국회 국정조사로 이어질까.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지난달 19일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추가조사를 결의했지만 이를 양승태 대법원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국회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사법부 내부에서 거세지고 있다. 

전날(5일)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달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법관대표회의 회의록을 공개하며 ‘법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의결을 받아들이지 않은 양승태 대법원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의 뜻을 표명하며 그를 압박했다. 

이에 더해 일선 판사들은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의 국정조사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서울 중앙지방법원 소속 남인수 판사는 오는 24일 열리는 2차 전국 법관대표회의에 '국정조사 제안'을 정식 안건으로 올리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를 계기로 사법부 내부에서도 국정조사 필요성을 둘러싼 격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오는 24일 2차 회의에서 이 안건이 결의할 경우 추가조사를 거부하며 버티던 양 대법원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진퇴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법부의 신뢰 훼손과 법관의 독립성 침해 측면에서 ‘법관 블랙리스트’ 실체에 관심을 기울이던 정치권도 사법부 내 국정조사 촉구 목소리에 반응하고 나섰다. 6일 박주민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원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조사 움직임을 가시화했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도 2차 법관회의 결과를 지켜본 뒤 국정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 대법원장 입장에서는 엎친데 덮친 격인 셈이다. 
  

  
◇ '코트넷' 국정조사 촉구 게시글에 판사들 '갑론을박'

남인수 판사는 지난 3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국정조사를 촉구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는 해당 게시글을 통해 "법원행정처 기회조정실의 컴퓨터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방안을 오는 24일 2차 전국법관대표회의 안건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남 판사의 국정조사 촉구 제안 글이 게시되자 판사들은 국회의 법관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한 국정조사 찬반을 두고 격론을 벌였다.

A 판사는 "더 이상 법원의 자체조사는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남 판사의 글에 공감한다는 글을 게시했다.

B 판사는 "양 대법원장은 이미 추가조사를 분명하게 거부했다"며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양 대법원장이 차버린 것은 못내 아쉽다"며 외부 개입을 통한 진상규명의 불가피함을 주장했다. 그는 또 "(블랙리스트 문제를) 그냥 덮어서도 안되고 새 대법원장이 취임하신 뒤에 추가조사를 하는 것도 좋지 않은 사례가 될 것 같다"면서 "사법부의 미래를 위해서 국정조사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C 판사도 "스스로 자정능력이 없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국정조사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법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언급하며 사법부 일에 국회를 끌어들여서는 안된다는 반대 주장도 제기됐다.
  

  
D 판사는 "국정조사라니요? 제발 정신 차립시다"라며 “함량미달의 질문들과 당리당략이 요동치는 난장판을 스스로 불러들이겠다는 것이냐”며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동료 법관들을 질타했다. 그는 “제발 당나라군 길잡이 역할만은 하지 말아달라”며 국회를 당나라군에 빗대기도 했다.

국정조사가 진행되기 전에 양 대법원장이 추가조사 거부 입장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 제시됐다.

E 판사는 "국회가 국정조사를 한다고 하면 우리가 법적으로 반대할 근거가 사라졌다"며 "현 상황에서 우리가 반대하면 그냥 적폐대상이 조직의 잘못을 은닉하기 위해서 반대하는 세력으로 치부될 뿐"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국정조사가 실시된다면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실시 이전에 다시 한번 사법부가 사법부 힘으로 자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대법원장님께 다시 한번 간곡히 조사거부 철회를 부탁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그러한 의결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외부 개입 빌미 제공한 梁 대법원장 '책임론' 불거질 듯 

사법부 일각에서는 1차 전국법관대표회의 이후 법관대표회의 자체에 대한 공정성 시비 등이 제기되는 등 흔들기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전날 법관대표회의 회의록이 공개됨에 따라 법관대표회의에 대한 공정성 시비는 일단락된 상태다.

앞서 1차 법관대표회의에서는 사법부 내 자체적인 추가조사를 전제로 84%의 법관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2차 대표회의에서 국회의 국정조사가 결의될지는 미지수다. 대다수 법관들은 사법부 문제에 외부 세력이 개입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찬성 비율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법관들의 결의 여부와 상관 없이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국민들에게 법관 블랙리스트 존부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서 진상조사위원회가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결론을 냈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전혀 설득력이 없다"며 "법원 스스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고 법관 독립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직접 나서 사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을 규명하자는 것에 대해 '소 뿔 바로 잡자고 소를 죽이겠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진상규명을 하는 것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양 대법원장은 임기가 두어 달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임기가 만료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며 "양 대법원장의 추가조사 거부와 국민적 의혹 증폭 그리고 설득력 없는 조사결과 등이 맞물려 외부 개입이 불가피한 상태가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양 대법원장이 법관 블랙리스트 추가조사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사법부 문제에 외부 개입을 자초하게 됐다는 평가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양 대법원장이 사법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추가조사' 결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비춰지게 했다는 비난여론도 거세지고 있다. 법관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진상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양 대법원장이 자체조사를 거부함에 따라 외부 세력 개입 명분이 생겼다는 취지의 비판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외부세력 개입에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내는 판사들의 특성상 실제 국정조사가 이뤄지거나 국정조사 움직임이 구체화되면 양 대법원장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은 불가피 할 것으로 보고 있다.[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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