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글로리아' 설정 사진

회사에 불만이 없는 직장인은 없다. 불만의 대상은 업무이거나 직원들 사이의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 직장인들이 불만을 해소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대화만을 나누거나 술자리에서 누군가를 험담할 수도 있다. 한 직장에서만 15년간 일해온 글로리아는 총기를 난사해 직장동료 10여 명을 사살하고 자살하는 끔찍한 선택을 한다.

지난 14일 개막한 연극 '글로리아'는 직장 내 총기 난사가 일어나기 전후의 변화를 공연시간 140분간 다룬다. 작품은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 잡지사의 일상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까발린다. 주인공은 글로리아의 직장 동료들이다. 글로리아는 기껏해야 5분 정도 무대에 나올 뿐이다.

막이 오르면 미국 뉴욕에 있는 한 잡지사 편집장 비서실이다. 편집장 비서실 인턴인 마일즈부터 시작해 애니, 딘, 켄드라 순서로 직원들이 하나둘씩 시차를 두고 출근한다. 겉보기엔 여느 사무실과 같아 보이지만, 이들의 웃는 모습에는 긴장감이 돌고, 주고받는 대화에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아슬아슬함이 있다. 이들의 아침 화젯거리는 지난 밤 글로리아의 파티이다.

글로리아는 잡지사 교열부 직원이며 편집장이 된 낸과 입사 동기이기도 하다. 직장에서 왕따인 글로리아는 직장 생활 15년만에 장만한 새 아파트에 직장동료들을 초대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파티에 간 것은 '딘' 한 사람뿐이었다. 정신없고 소란스런 편집부 사무실에 순간 글로리아가 나타난다. 알 수 없는 표정과 조금 낯선 움직임으로 글로리아는 사람들을 말없이 쳐다보다 사라진다.

잡지사의 정신없고 바쁜 일상이 계속되던 바로 그 순간, 짧고 정확한 총소리가 들려온다. 한 발, 또 한 발,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편집장 비서실에 나타난 글로리아는 마일즈와 애니를 사살한다. 글로리아는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하는 딘에게 "파티에도 와줘서 고맙다, 당신은 죽이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을 한다.

총기 난사 사건은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생존한 직장 동료들은 이 사건이 출판계에서 스타가 될 꿈을 이뤄 줄 확실한 도구임을 깨닫고 서둘러 책을 펴낸다. 몇 개월 후 딘은 '글로리아'란 제목으로 자신의 회고록을 제안받는다. 사건이 일어났던 시각 스타벅스에 가고 없었던 켄드라 역시 이 사건과 관련된 인물을 엮어 책을 낸다. 그리고 사건 당시 편집장실에 숨어서 살아남은 낸마저도 역시 글로리아 사건을 발판 삼아 자신의 삶을 포장한 책을 출간한다.

관객은 한 명의 배우를 통해 서로 다른 두 명의 등장인물을 지켜본다. 배우들은 잡지사 팩트체크팀장인 로린을 제외하곤 1인 2역 이상의 인물을 연기한다. '켄드라'가 잡지사에서 독립해 출판사를 차린 '제나'가 되고, '딘'이 영화사 전산실에서 일하는 '데빈'이 되고 급기야는 모두에게 소외 받는 인물 '글로리아'가 가장 영악한 '낸'이 된다. 관객은 입사 동기 '글로리아'가 사무실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낸'이 '글로리아'를 아주 영리하게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광경을 목격한다.

글로리아를 맡은 배우 곽지숙은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침묵 연기가 인상적이다. 글로리아의 침묵은 무대 위 동료 직원뿐만 아니라 객석의 관객들까지 숨죽이게 만든다. 또한 글로리아와 입사 동기였지만 그녀가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낸'으로 분한 곽지숙의 또 다른 연기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의 눈과 귀, 가슴을 강타한다.

연극 '글로리아'는 30세의 나이로 미국 오비상을 받으며,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극작가 브랜든 제이콥스-젠킨스(33)의 2015년작이다. 그는 흑인으로서 본인이 겪었던 정체성과 인종차별의 문제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써 주목받았다.

작가 젠킨스는 비극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신랄하게 풍자한 '글로리아'를 통해 한층 더 넓어진 생각거리를 관객에게 선물했다. 이 작품이 격찬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딱히 아쉬점을 꼽자면 왜 우리나라엔 이런 수준 높은 작품을 쓰는 극작가가 없느냐는 점이다.

8월13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3관. 입장료 4만원. 문의 (070)4141-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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