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관련 43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한 공소사실의 핵심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 현안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 청탁하고 그 대가로 최순실 측에 뇌물을 줬다는 것이다.

특검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적은 '안종범 수첩'을 위 혐의사실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특검이 공개한 '안종범 수첩'에는 증거력에 영향을 줄 키워드라 할 '합병'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삼성 측은 "안종범 수첩 어디에도 '합병'이란 단어가 적혀있지 않다"며 "만약 대통령이 정말 삼성 합병을 도와주라 압력을 행사했다면 대통령 말을 다 받아적었다는 안종범 수첩에도 해당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안종범 "삼성 합병 관련 대통령 지시 없었다"…특검, 김진수 진술로 우회 

'삼성, 엘리어트 대책, M&A 활성화 전개, 소액주주 권익, Global Standard(글로벌 스탠더드), 대책 지속 강구'

2015년 7월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진 독대 이후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받아적은 수첩 내용이다.

박 전 대통령은 7월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 안가(安家)에서 삼성, LG, 한화, 한진 순으로 독대를 가졌다. 독대를 모두 마친 후 안 전 수석에 전화해 메모할 것을 불러줬다. 전날인 2015년 7월24일 오후에는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김용환 부회장, CJ그룹 손경식 회장, SK 김창근 의장을 단독 면담했다. 독대 때마다 안 전 수석은 안가의 현관 옆 대기실에서 독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독대에는 배석자가 없었다. 독대가 모두 종료된 후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불러준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고 한다. 본인조차 알아보기 힘든 날림체로 주요 단어를 적어뒀다. 위처럼 단어형태로 나열된 메모들이 특검이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 '안종범 수첩'의 핵심 내용이다.

안 전 수석 본인도 지난 4일 증언대에 올라 '대통령으로부터 삼성물산 합병 관련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대한 지시를 받은 적 있나'라는 특검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이어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으로부터 공격받는 삼성이 안타깝다는 말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적 있느냐'라는 질문에도 "들은 적 없다"고 증언했다. 특검이 다시 '사석에서도 들은 적 없느냐'고 질문하자 "제 기억에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말씀하지 않으셨다"며 "저한테 이 부분에 대해 대통령이 지시하거나 질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처럼 안종범 수첩과 안종범 본인에게서 '삼성 합병 지시'에 대한 단서가 나오지 않자, 특검은 김진수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의 진술과 증언을 카드로 꺼내들었다.

특검은 19일 이 부회장 등에 대한 42차 공판에서 김 전 비서관의 진술과 증언에 대한 서증조사를 통해 김 전 비서관이 삼성 합병에 대해 파악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점을 강조했다. 앞서 김 비서관은 지난 1월 초 특검 조사에서 "안 전 수석과 최원영 전 고용복지수석으로부터 삼성물산 합병 건을 챙겨보라고 지시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가 이후 추가 조사에서 '합병 건을 챙겨보라는 말을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했다. 

이같은 김 전 비서관의 진술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있는 상황으로,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입증되지 않았다.

안 전 수석과 최 전 수석, 노홍인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선임행정관, 김기남 전 청와대 보건복지수석실 행정관은 김 전 비서관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은 지난 4일 박 전 대통령이 최원영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결권과 관련해 챙겨보라' 했다는 이야기도 특검 조사에서 처음 들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노홍인 전 행정관도 지난 3월20일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 전 수석이 (대통령에게 지시를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이 언론에 많이 나오고 시끄러우니 파악해보고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김진수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올 1월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들어갈때 모습.

◇"뇌물수수 혐의 김진수 불기소, 미국행 수상" VS 특검 "회유·압박 없었다"

이에대해 삼성 측은 김 전 비서관의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삼고 나섰다. 삼성 측 변호인은 "김진수 전 비서관은 비선진료 관련 현금과 명품가방을 받았다는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었고 이 상황에서 특검의 회유와 압박으로 특검 주장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고 추정된다"며 "김진수는 뇌물수수 혐의로 조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소되지 않았고 현재 미국에 있는데 매우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를 드나들며 박 전 대통령을 진료한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씨는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박 씨는 김 전 비서관에게 1000만원 상당의 현금과 명품가방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김 전 비서관은 특검 수사를 받았으나 입건되지 않았으며, 지난 3월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재용 재판에 세차례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모두 불출석했다.

특검 측 박주성 검사는 "특검의 회유가 있었다고 변호인들이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사실도 아니고 변호인들은 근거를 제시하라"며 "김진수는 박채윤에게 현금을 받았지만 현금은 곧바로 돌려줬고 가방은 여러 사정으로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가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돌려준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기소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양재식 특검보는 "김진수의 뇌물수수 불입건은 이미 다른 재판부도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 다른 검사를 통해 변호인들에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변호인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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