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피폭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출신 징용공들의 명부가 당국에 의해 '무단 폐기'된 사실이 40여년 만에 드러났다.

8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2차 대전 당시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의 나가사키 조선소 징용공이었던 한국인 김성수(91)·배한섭(91)·이관모(94)씨 등 3명은 자신들의 나가사키 조선소 근무 및 피폭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올 5월부터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관련 명부 확인 작업을 벌여왔다.

미쓰비스 중공업은 종전 뒤인 1948년 6월 일본 정부의 지침에 따라 전쟁 중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했던 한반도 출신 징용공 3418명의 명단을 나가사키 지방 법무국에 제출하면서 이들 징용공에 대한 체불임금 및 퇴직금 등 총 85만9779엔(약 873만원)을 함께 공탁했었다.

김씨 등은 지난 2014~2015년 나가사키시를 상대로 일본 정부가 전시 피폭자들의 의료비 지원 등을 위해 발급해주는 '피폭자 건강 수첩'을 신청했지만 시 당국은 이들이 "징용됐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수첩 발급을 거부해왔다.

때문에 미쓰비시 중공업이 나가사키 지방 법무국에 제출한 징용공 명단에서 김씨 등의 이름이 확인될 경우 일본 정부로부터 피폭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가사키 지방 법무국은 지난달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측에 "해당 명부의 보존기한(10년)이 1970년 3월 말로 만료됨에 따라 같은 해 8월31자로 폐기했고, 공탁금 또한 모두 국고에 납부했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내왔다고 마이니치가 전했다.

이와 관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는 일본 법무성이 1958년에 "한반도 출신 징용공에 대한 미지급 임금은 10년 시효가 지나더라도 국고에 납부하지 말고, 이미 납부한 경우엔 관련 서류를 보존하라"고 각 지방 법무국에 지시했었는데도 나가사키 지방 법무국이 이를 어긴 것이라며 "피폭자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일본 정부가 빼앗았다"고 비판했다.

다무라 가즈노키(田村和之) 히로시마(廣島)대 명예교수도 마이니치와의 인터뷰에서 "(명부) 폐기는 너무 경솔했다"며 "행정당국은 허술한 문서관리 실태를 감안해 공적 문서의 존재 유무에 구애받지 않고 피해자 본인 증언에 따라 '피폭자 건강 수첩'을 교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9~2010년 일본 법무성 조사에서 2차 대전 시기 일 군수공장 등에서 일했던 한반도 출신 징용공 가운데 명단과 미지급 임금이 공탁된 사람은 17만5221명, 공탁금 액수는 총 1억2756만엔(약 12억9780만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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