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오른쪽)이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퇴근을 하고 있다. 박 본부장은 과학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 퇴근 이후 자진 사퇴했다.

2006년 당시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황우석 전 교수의 논문 조작사태에 연루돼 물러났던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새 정부에서 부활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지만 11년 만에 또 다시 '황우석 망령'에 발목잡혀 불명예 퇴진했다. '황우석 사태'와 관련해 지난 10일 11년 만에 공개 사죄하며 "구국의 심정으로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고 밝히며 정면돌파 의지를 보였지만 끝내 반대여론의 벽을 넘지 못했다. 

11일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장(차관급)은 "너무 대통령께 부담이 되고 있다"며 자진 사퇴했다.

박 본부장은 이날 5페이지 분량의 '사퇴의 글'을 통해 "저의 사퇴가 과학기술계의 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어렵게 만들어진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서 과학기술인의 열망을 실현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어 새정부 내각에서 네번째 낙마며 차관급으로는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에 이어 두번째다.

박 본부장이 끝내 자진사퇴를 선택한 것은 자신을 향한 비난여론이 현 정부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새 정부의 조직개편으로 과기정통부내 국가 연구개발(R&D) '컨트롤타워'로 신설된 과기혁신본부의 '수장'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인 '혁신' 정책을 이처럼 들끓는 비난여론에서는 이루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새 정부는 연구자 중심의 R&D 혁신 정책 추진을 최대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치권은 물론, 과기계 내부에서 사퇴압박이 거세지는 등 연구자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에서는 정책집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 7일 임명 소식이 알려지자 8일 공공연구노조는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운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 "개혁의 대상인 자를 개혁의 주체에 임명했다"며 "한국 사회 과학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기술체제 개혁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건강과대안, 보건의료단체연합, 서울생명윤리포럼, 시민과학센터, 한국생명윤리학회, 환경운동연합 등 9개 시민단체에서도 임명 철회와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어 9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박기영 교수는 정말 아니다. 혁신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오히려 과학기술인에겐 악몽에 가깝다"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유일하게 한국기술사회는 지지선언을 냈다. 

또 이날 서울대 자연대·의대·수의대 교수들이 중심이 된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사퇴를 요구하는 서울대 교수 32인'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황우석 사태의 어두운 그림자가 새 정부가 나아갈 길에 어른거려서는 곤란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과기계 관계자는 "과기혁신본부장의 최대 미션이 연구자 주도의 자율적 환경을 만들고 국가 R&D를 혁신하라는 것인데 정작 스스로 윤리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혁신을 하라고 설득할 수 있겠느냐"며 "자리를 고수하면 새 정부의 과학기술 혁신 전체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기혁신본부는 연간 20조원에 육박하는 R&D 예산 심의·조정 권한은 물론, 기존에 기획재정부가 갖고 있던 R&D 예비타당성(예타) 조사권한도 갖게 되는 명실상부 최고 R&D '컨트롤타워'다. R&D 지출한도도 기재부와 공동설정하는 권한을 갖게된다. 범부처 조율을 위해 장관만 참석하는 국무회의에도 과기혁신본부장은 참석이 가능해 '왕차관'으로 통했다.

하지만 예타 조사 등 권한은 국회 관문을 통과해야하는 사안이다. 국가재정법, 과학기술기본법 등 법개정이 필요한데 황우석 사태 문제로 '꼬투리'가 잡힌 상태에서 기재부는 물론, 여타 부처와의 원활한 업무 조율에 나설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팽배했다. 

익명을 요구한 과기계 관계자는 "박 교수는 과거 참여정부 시절 과기혁신본부일을 해봤고 R&D 시스템에 대해 잘 학습돼 있어 업무면에서는 신임 본부장으 적임자라는데 이견이 없었다"며 "하지만 도덕성 문제때문에 발목이 잡혀 사퇴하지 않고 버텼어도 앞날이 순탄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3차관' 인선으로 R&D 컨트롤타워가 완성되면서 기대에 들떴던 과기정통부는 최종 낙마 소식에 뒤숭숭한 분위기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제야 인사문제가 마무리되나 했는데 또 다시 공백 상태가 됐다"며 "차관 공석으로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된 실국장 인사까지 늦춰지는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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