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청 연출 작 '달빛유희' 포스터(왼쪽)와 지도교수 연출로 바뀐 '달빛유희' 포스터. 연출가 신유청씨는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 '연극학과 및 연극계 위계 문화 개선을 위한 대학로 엑스포럼'에서 2013년 1월에 교내에서 연출한 '달빛유희'를 지도교수가 같은 해 11월 외부 페스티벌에서 그대로 공연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연극계 을(乙)들의 쌓인 분노와 성토가 넘쳐났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 '연극학과 및 연극계 위계 문화 개선을 위한 대학로 엑스포럼'에서다. 토론회가 진행될수록 부당한 대우를 받은 '갑질' 사례가 줄기를 당기면 따라나오는 고구마들처럼 쏟아졌지만 정작 당사자인 갑(甲)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현장 연극인, 연극 전공 대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토론회는 두 가지 안건을 동시에 다루면서 해결방안을 찾는 자리였다. 먼저 뉴스1이 지난 7월26일 단독 보도한 '작품 혹평에 시간강사 박탈…연극계 '교수 갑질' 의혹'과 함께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학생 자치권 확립 위원회(이하 호원대 공연학부 학생회)가 지난 10일 연극계 '교수 갑질' 징계 요구 성명을 통해 드러난 '학생 창작물 강탈' 의혹 등이 의제에 올랐다.

김숙현 연극 평론가는 모 대학 시간강사로 출강하던 중 올해 서울연극제 합평회에서 타 대학 교수들이 참여한 작품을 혹평했다. 이후 그는 2학기 강의 배정 과정에서 기존 강의를 갑자기 박탈당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연극계에서는 '교수라는 지위를 권력화해 시간강사라는 불안정한 지위마저 박탈함으로써 자유로운 비평과 학문 활동을 억압한 충격적인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호원대 공연학부 학생회는 모교 ㄱ교수가 △학생의 창작물을 뺏어가려 했고 △학생의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전임 교수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호원대는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꾸려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 한편, ㄱ교수와 배우자인 A대학 ㄴ교수는 김숙현 평론가의 강사직 박탈 의혹에도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토론회에선 '교수 갑질'의 다양한 사례를 비롯해 재학생 선후배 간의 갑질과 공적자금 지원 기관의 갑질 사례도 폭로됐다. 특히, 연출가 신유청씨가 토론회 의제와 관련된 교수들이 4년 전이 2013년 재학생인 자신이 연출한 작품 '달빛유희'를 이름만 바꿔서 외부 페스티벌에서 공연했다고 밝혀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다.

나 연출가는 "내가 겪은 4년 전 일은 호원대 학생들이 겪었던 일과 다를 게 없다"며 "당시 제가 모교의 다른 교수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어쩌겠어'라는 느낌으로 달래줬다"고 했다. 이어 "호원대 학생들이 이번 일을 통해 잃는 것보다 귀중한 무언가를 얻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뉴스1에선 사실 여부와 반론을 확인하기 위해 이들이 거론한 해당 교수들에게 문자와 전화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무응답이었다.

한진규 호원대 공연학부 학생회장은 "관련 교수들이 참여해 토론회에서 입장 표명을 하길 기대했으나 반쪽 자리 토론회가 됐다"며 "이번 사태가 비일비재한 일로 끝나지 않고 공론화해서 모두가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혹평했다는 이유로 강사직을 박탈당한 피해자인 김숙현 평론가는 "시간강사 복직을 위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다"며 "언론 보도 이후, 해당 대학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아느냐고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심지어 토론회를 주최한 이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었다"고도 했다.

이날 포럼에 함께한 김유미 평론가는 또 "혹평을 했다고 '평론 갑질'이라 오해하는 현장 연극인들이 있다"며 "적어도 이번 사례처럼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공연에 관해서 평론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좋은공연안내센터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 '연극학과 및 연극계 위계 문화 개선을 위한 대학로 엑스포럼' 현장

남윤수 한예종 학생변호센터 직원은 이번 갑질 사태에 관해 "(연극계) 교수 집단은 위계 서열 꼭대기에 있다"며 "공개적인 자리에서 연극 평론을 언급하고 해당 강사를 자르는 일, 교수가 학생의 노동력을 강제 동원하고 창작물을 강제로 강탈하는 일 등 최근 사태는 연극계의 고질적 문제를 축약해 보여준다"고 했다.

나경민 배우는 사태 해결의 첫 실마리를 '자기반성'과 '자기 고백'으로 꼽았다.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처럼 쉽게 나눌 수가 없다"며 "공연계 종사자들은 교수갑질, 성폭력, 임금 체불 등 다양한 문제에 얽혀서 특정 부분에선 윤리적으로 떳떳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문제에서 떳떳한 연극인이 배우들에게 임금을 못 줬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윤리적으로 떳떳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입장이 너무 섬세하게 갈라져있기 때문에 누구도 선뜻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결가능한 방안의 첫 실마리는 자기 반성과 자기 고백입니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한편, 갑질 의혹을 받은 해당 대학 교수들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토론회 불참 사유에 관해 "우리가 공개토론회를 먼저 제안한 것은 사실"이라며 "지난 9일 김숙현 평론가와 관계자들이 모여 서로의 오해를 이해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합의문을 발표했기 때문에 더이상 토론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호원대 학생작품 강탈 의혹 일지

김숙현 평론가 강의배제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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