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울며 싫다고 말하는데도 강제로 당하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없다. 그것도 믿었던 사람에게서 말이다. (중략) 성폭행을 저지르면서 울지 말고 그냥 즐기라니…울지 말고 즐겨라. 나는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한다. 즐겨라. 여기에 견줄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 아무것도.'(책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 중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상황을 요약한 말로 자주 쓰인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먹고살기 어려워진 경제적인 측면의 지옥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퍼붓거나, 사회적 약자를 향해 집중되어온 욕, 비아냥, 무시, 저주, 폭행, 살인 등은 한국을 더욱 아비규환으로 만들어왔다. 그런 행위를 한 이들에게 '왜'라고 물어도  다양한 이유 속의 근본은 결국 '혐오'인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최근 우리 자신 속의 혐오를 분석하는 책이 잇달아 출간되어 눈길을 끈다. 지난주 출간된 '그건 혐오예요'(행성B잎새)는 영화감독, 여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 가는 불안정 노동자이기도 영화감독 홍재희씨가 사회적 약자로서 저자 자신이 겪은 일들을 토대로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성소수자, 동물 문제에 오래 천착해 온 독립영화 감독 6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쓴 책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한국 사회가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관대하고 심지어 관대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혐오를 혐오라고 분명히 말함으로써 혐오끊기를 시작하자고 말한다. 이들은 "지금 한국 사회는 여유는커녕 생각 자체를 하기 힘들 정도로 속도에 미쳐 돌아가고 있어서 더 큰 위기"라고 우려하면서도 "최근의 페미니즘 붐은 ‘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뒤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사회의 변화를 기대했다.

또 책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이후)는 일상의 말, 글, 몸짓,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 등에 만연한 혐오표현이 무엇인지, 왜 문제인지, 혐오표현은 개인에게만 영향을 끼치는지, 혐오표현이 일으키는 결과는 무엇인지, 혐오표현을 막아야 하는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법적 해석과 사회적 상식의 범위에서 통찰하고 있다.

이 책을 쓴 뉴욕대학교(NYU) 로스쿨의 제러미 월드론 교수는 책 '혐오 발언'을 쓴 여성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궁극적으로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도 제정하지 말자"고 주장한 것과 달리 혐오표현의 규제를 찬성한다. 포용의 공공선과 정의의 기초에 관한 상호 확신의 공공선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리아 스토이안이 쓰고 그린 책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북레시피)는 성폭력을 경험한 전 세계의 남녀로부터 익명의 메시지를 받고 인터뷰를 한 내용을 생생한 그림에 담았다. 

책에 담긴 20가지 실화 속 일상적인 성희롱, 더 나아가 성적 학대와 폭행은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흔히 일어나는 사례다. 그런데 더 고통스러운 것은 성폭력으로 받게 된 상처를 타인에게 내보이면 "그냥 좋게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점이다. 책은 이로 인해 더 깊은 상처를 받으며 "어쩌면 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왜곡된 감정을 갖게 되는 남녀의 상황을 강렬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출처: 뉴스1  hshan997@newsto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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