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한 강모씨(여, 73세)는 생계 급여 월 49만원을 받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다. 생전 남편이 대부업체에 진 600만원의 빚은 강씨의 몫으로 남았다. 국민행복기금과 약정을 맺으면 90%의 원금을 감면해 주지만 강씨에겐 남은 60만원을 갚을 여력이 없다.  

국민행복기금 미약정 장기소액 연체자(40만3000명)의 현실이다. 1인당 평균 450만원의 빚을 약 15년간 연체하고 있다. 10명 중 3명은 기초생활수급자거나 60세 이상 고령자다. 정상적인 금융 거래는 물론 생계조차 버거운 취약계층이다. 

금융당국이 29일 발표한 장기소액연체 지원 대책은 금융 소외자가 갚기 어려운 빚을 탕감·감면해 재기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자, 금융위원회가 표방한 '포용적 금융'을 위한 서민 대책의 일환이다.   

지원 대상은 사상 최대다. 많게는 대상자가 259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진 빚만 22조1000억원이다. 행복기금 내 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 장기소액연체자 83만명(3조6000억원) 외에 민간 금융회사와 대부업체, 금융 공공기관의 76만명(2조6000억원) 등 159만명(6조2000억원)이 이번 대책의 핵심 지원 대상이다.

장기소액은 아니지만 행복기금 내 기타 연체자 100만명(15조9000억원)도 상환능력에 따라 최대 90%까지 원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물론 259만명 모두의 빚을 탕감해 주는 건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 보듯 채무자 빚 탕감 정책은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형평성 논란 △재원 마련 등 시빗거리를 낳는다. 이번 대책이 늦어진 것도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 탓이 컸다.

그래서 나온 지원 기준이 '상환능력'이다. 처음으로 장기소액 연체자 상환능력 유무를 가릴 기준도 이번에 만들었다. 먼저 생계에 필요한 자산 외에 회수 가능한 재산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서 중위소득 60%(1인 가구 월 99만원, 4인 가구 월 268만원) 이하의 저소득자여야 한다.

상환능력에 따라 채무 전액을 탕감받을 수도, 지원 대상에서 원천 배제될 수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채무 정리를 위해 처음으로 국세청 등의 소득·재산 정보를 활용한다"며 "엄격하고 깐깐하게 빚 상환 능력을 심사해 실효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빚 정리도 연체자 개개인의 상환 능력과 형평성을 고려해 차등화했다. 먼저 행복기금 장기소액연체자 중 미약정자는 상환능력이 없으면 즉시 추심을 중단한다. 다만 채권 소각은 최대 3년 유예한다. 정말 빚을 갚을 수 없는 연체자인지 재심사하는 등 꼼꼼히 살피기 위해서다.

약정을 맺고 빚을 갚고 있는 연체자는 상환 불능 판명 시 즉각 채무를 면제한다. 성실 상환자가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짰다. 민간 금융사나 대부업, 금융공공기관 보유 장기소액연체 채권도 상환능력에 따라 빚을 전액 탕감하거나 채무조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재산을 감추고 채무 탕감을 신청하는 부정 감면자에겐 '페널티(처벌)'를 준다. 적발되면 신용정보법상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돼 최대 12년간 금융거래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선 상환능력 심과 과정에서 해외 반출 등 의도적인 재산 은닉은 걸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민간 금융회사가 보유한 연체 채권의 탕감·감면에 필요한 재원은 민간에서 끌어 온다. 금융회사 출연금과 시민·사회단체 기부금 등으로 마련한다. 정부 재정을 투입해 특정 채무자만 지원한다는 비판을 의식해서다. 예컨대 금융회사들이 행복기금 약정 채권을 캠코(자산관리공사)에 매각에 배분받은 대금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국민행복기금과는 별도의 비영리 재단법인 형태의 한시 기구도 만든다. 

장기소액 연체는 아니지만 10년 이하, 1000만원 이상의 행복기금 내 기타채권도 채무감면 대상이다. 연체자는 100만명, 채권 규모는 15조9000억원에 달한다. 상환능력에 따라 최대 90% 원금을 감면하고 분할상환할 수 있다. 일시 상환하면 20% 추가 원금 감면 혜택도 준다. 이밖에 행복기금 보유 채권 주채무자의 연대보증인 23만6000명도 재산 조사 후 별도로 즉각 채무를 면제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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