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 관계자가 29일 청와대 앞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심사위원 후보를 원상복구하라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무형문화연구소 제공

유네스코 무형유산분야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인 제12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가 오는 12월 초 제주에서 개최될 예정인 가운데, 이번 회의에서 진행될 인류무형유산 심사위원 선거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유네스코 인가 비정부기구(NGO) 협의회'가 "문화재청이 인류무형문화유산 심사위원 선거에 나설 우리나라 후보를 기존 등록했던 NGO에서 문화재청 산하기관으로 일방적으로 바꿨다"는 주장을 이번 회의에서 국제적으로 알리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어서다. 일시적인 국제적 망신을 각오하더라도 투명한 행정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유네스코,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제12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를 오는 12월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4일부터 9일까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다.

이번 회의에는 24개 위원국의 대표단 이외에 175개 협약국의 대표단, 유네스코 사무국, NGO 전문가 등 약 1000여 명이 참석한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개최국이자 의장국으로 행사를 주관한다. 대한민국에서 이 회의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2003년 채택되어 2005년 발효된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의 목적을 달성하고 이행을 촉진하기 위한 위원회로서, 175개 협약 가입국에서 선출된 24개 위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한 차례 회의를 열어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긴급보호목록, 모범사례의 등재 여부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기금의 운용계획 등을 결정하며, 협약의 이행과 증진을 위한 사항 등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지난해 12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진행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 회의에서 제주해녀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던 순간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특히 이번 제주 회의에서는 아시아 지역 NGO 몫으로 된 심사위원 한 자리를 새로 선출하는데, 한국을 비롯해 3개국에서 입후보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은 수년 전부터 12명의 인류무형문화유산 심사위원 구성원 중 6명은 정부 소속 전문가 집단에서, 나머지 6명은 유네스코 인가 NGO 중에서 지역별로 선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인류무형유산 심사위원 선거의 한국 후보자 교체 문제를 놓고 문화재청과 '한국 유네스코 인가 NGO 협의회'가 갈등을 빚고 있어 국제적인 논란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인류무형문화유산 심사위원 선거에 나설 우리나라의 후보를 등록까지 마쳤던 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에서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재재단으로 교체했다.

문화재청에선 무형문화연구소가 문화재청에 제출한 서류상에 문제가 있어서 후보를 교체했다는 입장이지만, 협의회에선 "이해할 수 없다"며 "더구나 교체한 후보인 한국문화재재단은 명목상 NGO일 뿐, 문화재청의 산하기관으로 결과적으로 유네스코를 우롱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협의회 회장이자 무형문화연구소장인 함한희 전북대 교수는 "문화재청의 안내에 따라 유네스코에 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 10월9일 이전에 아무 문제 없이 서류를 제출해 후보 등록을 마쳤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문화재청이 뒤늦게 '문화재청에 냈던 후보 등록을 위한 사전 신청 조서에 무형문화연구소의 산하 사단법인 무형문화연구원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는 이유로 우리 연구소와 협의회에는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등록 마감일 이후에야 유네스코에 통보해 후보를 일방적으로 교체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애초 유네스코 후보 등록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문화재청은 '필요 없다'며 사전 신청 조서를 다시 내라고 안내하지도 않았다"며 "따라서 정식 후보 등록을 마친 이후에 억지 이유를 드는 것이며, 이를 두고 유네스코 내부에서도 '이상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에따라 무형문화연구소는 "일시적으로 국가 망신을 가져오더라도 제주에서 개최되는 이번 유네스코 정부간 위원회 회의와 NGO 포럼에서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내적으로는 관련 학계의 서명 운동과 함께 문화재청의 일방적 후보 교체에 대한 법적 심판을 받아 볼 것"이라며 "문화재청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행정을 바로잡겠다는 이런 행동이 길게 보면 우리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도 했다. 먼저 무형문화연구소는 29일 청와대 앞에서 후보 교체가 부당하는 내용의 1인 시위도 했다.

'한국 유네스코 인가 NGO 협의회'의 주요 인사들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재청의 후보 교체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형문화연구소를 비롯해 세계탈문화예술연맹, 세계무술연맹, 강릉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ICCN) 등으로 구성된 '한국 유네스코 인가 NGO 협의회'에서도 "만장일치로 추대해 등록한 후보를 일방적으로 교체하면서 문화재청은 협의회와도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며 무형유산 정부간 위원회에서 문화재청의 처사를 알리는 데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병진 세계탈문화예술연맹 사무총장은 "우리도 인류무형문화유산 심사를 담당할 전문가가 충분히 있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무형문화연구소에 대승적으로 양보해 심사위원 후보로 추대했다"며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협의회와 상의 없이 후보를 교체했고, 대안으로 협의회 전체를 후보로 등록해달라는 요구에도 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네스코를 비롯해 국제기구에서 오랫동안 일한 외교관 출신의 최동환 세계무술연맹 전 사무총장은 "유네스코가 최근 '정부 간 외교력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는 측면이 있어,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문화재재단을 후보로 내세운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투명한 행정 구조를 바로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1  webmaster@newstour.kr

<저작권자 © 뉴스투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