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지 않고도 대화할 수 있다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 백악관이 제동을 걸면서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정책 혼선이 또 한번 연출됐다.

대북 전문가들은 경질설이 돌고 있는 틸러슨 장관의 돌출 발언이라는 분석과 함께 유리한 대화 조건을 조성하려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엇갈린 분석을 내놓았다. 

로이터통신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이 "북한의 최근 미사일 실험을 고려할 때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북한과 관련한 대통령의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 데 이어 백악관이 다시 한번 북한의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로써 틸러슨 장관이 전날 워싱턴DC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한 발언은 백악관과 조율을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백악관과 틸러슨 장관의 이같은 엇박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지난 10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틸러슨 국무장관의 발언에 대해 "로켓맨과 협상은 시간 낭비"라고 공개 면박을 주었다.

미국 내에선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미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엇갈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것은 대화를 재개하려는 틸러슨 장관의 노력을 훼손할 뿐이다"며 미 정부는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이날 보도했다.

일각에선 '트럼프-틸러슨' 엇박자가 고도의 대북 압박 전략이라는 분석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 틸러슨 장관이 '관여'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최대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라는 미국 정부 대북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또 군사 옵션을 선택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전배치가 코앞에 다가오면서 미국의 군사옵션 가능성이 높아지자 틸러슨 장관이 최후의 수단으로 '조건 없는 대화'를 띄웠다는 것이다.

실제 틸러슨 장관은 전날 "우리 뒤에는 강력한 군대가 있다"며 "만약 북한이 나쁜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준비됐다"고 미국이 대북 군사옵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그만큼 지금 국면이 심상치 않고 다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틸러슨 장관이 중국과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를 했고 이를 공개하면서 북한을 압박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며 "한손에는 제재와 압박, 다른 손에는 대화를 들고 상황에 따라 방점을 다르게 찍고 있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틸러슨 장관은 북한에서 대량 난민이 발생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벌어질 때를 대비한 비상 계획을 중국 고위 관료들과 논의했다며 "만약 무슨 일이 벌어져 (미군이) 군사분계선(DMZ)을 넘게 되면 다시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게 할 것"을 중국에 약속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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