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연봉을 앞세운 중국 항공사의 공격적인 스카우트 공세에 한국을 떠나는 조종사들이 늘고 있다. 이에 비례해 국내 항공업계에선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급성장하는 항공수요에 발맞춰 주로 기장급 조종사를 우대하고 있는데 베테랑 조종사 유출에 따른 항공안전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중국行 조종사' 3년만에 10배 가까이 늘어, 올해 150명 이직 추산

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에서 중국 업체로 이직한 조종사는 2014년 17명에서 2015년 84명, 지난해에는 100명을 돌파했다.

국토부는 올해 중국 항공사로 이직한 조종사가 15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3년 사이 중국행을 택한 조종사가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올해 6월까지 이미 90명이 이직했다.

중국 항공사의 공세적 인력 빼가기는 국내 1·2위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게 가장 큰 부담이다. 중국 업체들은 주로 대형 항공사에서 근무한 베테랑 조종사를 선호하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소속 조종사가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중국 항공사가 국내 조종사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항공업계 성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 탓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3년 다수의 민영항공사 설립을 허가하면서 중국 내 조종사 수요가 크게 늘었다.

중국도 자체적으로 신입 조종사를 배출하고 있으나 이들이 기장 자격까지 갖추려면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한국 베테랑 조종사들이 영입 우선순위가 되고 있다. 서울에서 취업설명회를 갖는 중국 항공사가 있을 정도다.

중국 항공사들이 국내 베테랑 조종사들을 유혹하는 최대무기는 고액연봉이다. 중국 항공사는 평균 경력 10년 국내 조종사에게 주로 2~3억원대의 연봉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형항공사에서 15년 근무한 조종사의 연봉(1억5000만원가량)을 감안했을 때 매력적인 조건이다. 국내 항공사에 비해 업무 강도가 낮다고 알려진 점도 조종사들을 유혹하는 요인 중 하나다.

◇ 스카우트 경쟁 가세한 LCC, 부기장도 인력 빼가기 타깃

여기에 기단 확대 및 중장거리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저비용항공사(LCC)들까지 스카우트에 가세하며 베테랑 조종사 모시기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올해 3월 기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조종사 수는 2697명, 1432명이다. 국내 LCC 업계 1, 2위를 다투는 제주항공, 진에어의 경우에는 406명, 381명이다.

에어부산과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도 200여명 수준의 조종사를 보유 중인데 여객기 확대와 노선 증설에 따라 추가 조종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후발주자 에어서울을 포함한 LCC 보유 전체 항공기수는 26일 현재까지 122대로 아시아나항공(82대)을 이미 넘어섰다. 제주항공은 내년까지 8대를, 진에어는 2020년까지 13대를 더 추가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LCC에서 국내 조종사들이 경험을 쌓는 일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이들이 베테랑 인력이 됐을 때 중국 업체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LCC에서 경험을 쌓은 조종사들이 기장 승진 후 외국 항공사로 갈아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다. 중국 신생 항공사들은 기장 승진 기간 단축을 조건으로 내세워 기장급 조종사는 물론 부기장 이탈까지 부추기고 있다.

◇ 머리 맞댄 민·관 "조종사 육성에 사회적 비용 투입, 국부유출로 봐야"

기장급 조종사가 이직하면 남아 있는 인력이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행안전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명의 베테랑 조종사를 키우기까지 1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해외 이직을 국부유출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와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조종인력 수급을 위한 민관협의체 회의를 열며 이에 대한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20일 항공사 훈련생으로 선발돼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조종사로 취업을 보장하는 내용의 '조종인력 양성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에는 항공사 훈련생으로 선발될 경우 취업 보장(훈련 완료시)과 약 2000만원의 비용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때 훈련비용은 항공사가 일부 부담하고 정부는 해당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조종사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양질의 인력이 늘어나면 인력부족 문제 해소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게 국토부 기대다.

다만 항공사 지원으로 육성한 조종사가 경험을 쌓은 후 해외로 이직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은 풀어야할 숙제로 남았다.

업계 관계자는 "숙련 조종사를 키우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인력이탈을 국부유출로 보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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