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들의 뇌물공여 혐의 관련 항소심 오후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삼성은 대한민국 대표 기업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선고에 앞서 경제계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5대그룹 한 관계자)

재계가 또 한번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였다. 27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2심) 결심 공판에 대한 반응 얘기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지난 8월 1심 구형 때와 같은 중형이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특검은 이날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과 함께 기소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66·부회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63·사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64)에겐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황성수 전 전무(55)는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 이날 결심 공판을 끝으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은 마무리됐다. 2심 선고는 내년 1월 말쯤으로 예상된다. 

경제계는 침묵에 휩싸였다.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삼성 계열사 임직원들은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가 커보였다. 한 삼성 관계자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면서도 "이 부회장의 최후 진술에 모든 것이 녹아 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결심 공판에서 "(특검 주장처럼) 승계 작업 등의 사익 추구를 생각하고 (박 대통령의) 요구에 응한 것은 절대 아니다"고 특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부회장 재판과 선고 과정에서 도입된 '묵시적 청탁'이란 모호한 개념이 향후 기업 활동을 옥죌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1심에선 이 부회장이 삼성의 개별 현안을 부정 청탁하진 않았으나 '경영권 승계'에 대한 포괄적 현안을 묵시적으로 청탁했다고 보고 실형을 선고했다. 

재계 관계자는 "법은 획일적이고 객관적인 잣대로 적용해야 하는데 '묵시적 청탁'이란 말 자체가 모호하다"며 "앞으론 정부 정책 방향에 화답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나 기부활동도 고민해야 할 판"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투자·기부 활동에 '묵시적 청탁' 개념을 적용할 경우 '이현령 비현령(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입맛에 맞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5대 그룹을 포함한 유력 대기업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다. 특검의 중형 구형은 가혹하다는 게 일관된 반응이었다. 1심 선고 후 3개월간 이어진 치열한 법리 공방에도 특검이 엄혹한 경제계의 현실과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섭섭함도 토로했다. 

국내 대표기업이자 글로벌 IT기업인 삼성전자의 장기 총수 부재 사태가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나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구속기소됐다. 사상 초유의 총수 부재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주력 산업에서 삼성전자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 하고 있는데 '오너 공백'이란 현 상황과 분리 해석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나 신사업 진출에 대한 총수의 판단과 의사 결정이 지연되면 기업 경쟁력 약화가 불 보듯 뻔한 것 아니냐"며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 대응이 약화하고, 대외 신인도도 떨어질텐데 남 일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 주력 사업이 올해 최고 실적을 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 시계는 현재 멈춰 있다. 지난해 11월 이 부회장이 주도한 미국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을 9조원에 인수한 게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이 부회장 공판 결과가 경제계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반응도 이어졌다. 새 정부 들어 반(反) 대기업 정서가 심화하고 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면서 경제 주체인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1심 선고 이후 기업들이 경제 활동을 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새 정부와 재계의 소통이 단절되면서 다음 차례는 또 누구냐는 말들이 오간다"며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을 좀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재계 핵심 관계자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압박 등으로 내년 기업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엄단하기 보다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글로벌 경영 전행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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