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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한강하구 공동이용, 26일 첫발 내딛는다골재채취·관광·휴양·생태보전 등 사업 추진 기대
강화군 월선선차장 인근 해상에서 평화의 배가 운항되고 있다.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행사는 정전협정 65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행사로 지난 2005년부터 정전 협정일인 7월 27일마다 배가 떴지만 2008년을 끝으로 뱃길이 묶였다. 지난 7월 27일 10년만에 재개됐다. 2018.7.27/뉴스1 © News1

9.19 남북군사합의서 이행을 위한 남북장성급 회담이 오는 26일 판문점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선 군사공동위 구성 및 운영 방안과 함께 한강하구 공동조사 방안이 논의된다.

남북군 당국은 군사합의서에서 한강(임진강) 하구 공동이용을 위한 군사적 보장대책을 강구하기로 합의했다. 또 공동이용수역에 대한 현장조사는 오는 12월 말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지리적으로, 한강하구는 육상 군사분계선(MDL)의 서쪽 끝인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부터 강화도의 서쪽 볼음도(남쪽)와 굴당포(북쪽)를 연결하는 선까지의 수역을 의미한다.

이 수역은 총 연장 약 70㎞, 면적 약 280㎢, 폭 약 1~10㎞, 평균수심은 2~4m, 최대 수심은 약 14m다.

한강하구는 한반도 역사에서 오랫동안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했다. 하지만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로는 대결과 갈등의 장으로 바뀌었다.

'한강하구 모래준설을 위한 한강하구중립지역 및 관할권 검토' 논문(2008년) © News1

당초, 정전협정 제 1조 5항은 한강하구에서 남북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했다. 중립수역으로 설정됐던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비군사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려웠다.

실제, 이곳에선 충돌과 교전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1967년에는 유엔순찰선이 피격돼 미군 1명이 전사했고, 1980년에는 무장공비 3명이 침투 중 사살됐다.

1990년대 들어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분위기가 보이자 골재 채취 목적으로 민영 선박의 항행이 임시적으로 허용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강하구의 지정학적 위치가 다시 부각됐다. 2006년 4월 남북장성급 회담에서 한강하구 골재 채취 문제를 남북경제협력추진위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또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성의 일환으로 한강하구의 공동이용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2008년 정권이 바뀐 뒤에 남북 간 논의는 모두 중단됐다.

한강하구는 최근 수년 간에는 불법 조업하던 중국어선이 진출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에 군경합동 민정경찰이 단속을 실시하자 북한은 군사적 도발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한강하구의 골재채취를 통해 임진강 하류지역(문산)의 수위를 저하시켜 수해를 예방하고 수도권 일대의 안정적 골재수급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관광, 휴양 및 생태보전 등 사업도 병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현재 국방부 차관)은 지난해 5월 제주포럼에서 "한강하구는 대규모 습지와 갯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어업, 항행, 토사 준설 등을 북측과 공동이용 시 직접적인 평화,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서 차관은 "김포 시암리 습지, 유도 등 습지보호와 함께 생태환경관광 등의 가능성도 크다"며 "향후 강화~해주 고속도로·연륙교 개통시 (이 지역이) 남북교류 및 교통의 요지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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