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에 진열된 식용계란. 2017.8.18

"그동안 친환경이라고 해서 믿고 샀는데 앞으론 뭘 보고 사야 하죠?"  

18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형마트. '살충제 검사결과 문제없다'는 푯말을 붙여 놨지만 계란 코너는 개미 한 마리조차 없을 정도로 썰렁했다. 드문드문 계란코너 쪽을 쳐다보던 고객도 이내 고개를 돌렸다.

옆 과일코너를 둘러보던 주부들은 복숭아가 상한 곳은 없는지 상자 속을 들여다봤다. 이날 만난 주부들은 "뭘 보고 제품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동안 '친환경 마크'를 보고 샀지만 최근 관련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오면서 못 믿게 됐다. 건강을 생각해 더 비싼 돈을 내고 샀는데 일반 계란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친환경 마크에 대한 신뢰도가 뚝 떨어졌다. 주부들은 실망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꼈다.

임신 중이라 친환경 제품을 선호했다는 송우희씨(가명·33)는 "일부러 친환경·유기농·무농약·무항생제 인증 제품을 돈 더 주고 사 먹었는데 다 부질없었다"며 "친환경이라고 하면서 자연방목하는 것처럼 포장했는 데 결국 소비자를 속인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론 친환경 마크가 붙은 제품을 사지 않겠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부인 원미영(가명·53)씨도 "친환경 인증을 어떻게 했길래 살충제 성분이 나오냐"며 "친환경 제품에 대한 실망을 넘어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주부도 "살충제 계란이 나온 상황에서 친환경 인증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구매 기준이 없어졌다"고 꼬집었다.

친환경 인증에 대해 뿔이 난 건 주부만이 아니다. 계란은 일반 가정과 식당, 반찬가게 등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식재료다.

식당과 반찬가게는 물론 이유식 전문점에서도 피해를 입었다. 이날 서울의 한 유명 수제 이유식 가게는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살충제 계란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면서 아이 엄마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가게 점원은 상황이 익숙한 듯 "이상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수화기를 내려놨지만 불만을 숨기진 않았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이다 보니 친환경 제품을 고집했다"며 "우리나라가 후진국도 아닌데 친환경 인증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식당들은 계란메뉴를 중단했다. 김밥은 물론 라면에서도 계란을 뺐다. 직장인이 많이 찾는 서울 중구의 한 분식점 직원은 "도대체 어떤 식재료를 믿고 쓸 수 있겠냐"며 친환경 인증 제도를 비판했다.

18일 오후 경남 창녕군 유어면 연암축산 산란계 농장에서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해 가축 위생관리 군청 관계자들이 폐기 처분하고 있다. 2017.8.18

먹거리 불안은 살충제 계란만이 아니다. 햄버거와 족발·편육 등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도 안전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4세 여자아이가 맥도날드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를 먹은 뒤 복통으로 입원한 뒤 '용혈성요독증후군(HUS·햄버거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나왔다. 햄버거병은 주로 고기를 갈아서 덜 익혀 먹었을 때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햄버거병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패스트푸드점을 찾는 어린이 고객이 줄었다. 이날 서울 중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도 어린이 고객은 보이지 않았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주거지역에 있는 매장을 중심으로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즐겨 먹는 족발과 편육 등도 안심하고 먹기 힘들어졌다. 한국소비자원이 유통 중인 족발과 편육을 조사한 결과 식중균과 대장균군이 발견됐다.

외식이 잦은 직장인들은 불안해했다. 을지로 인근에서 근무 중인 오일현씨(가명·35)는 "회식할 때나 식사 때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햄버거병에 살충제 계란, 대장균 족발까지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다"고 토로했다.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관련법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입으로 들어가는 제품인 만큼 법을 강화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부인 이미숙씨(가명·33)는 "이런 일이 터지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문제"라며 "법과 처벌을 강화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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